제국주의시대
대표적 국가인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차지했다. 아시아는 일본이 한국 중국을 식민지배했고 동남아시아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영국이 미얀마 프랑스가 베트남, 포르투갈이 필리핀을 차지했다. 그런데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 위치한 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독립국 지위를 잃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영국 시대
19세기 후반, 시암(태국의 19세기 국가명칭)은 여러 식민지들을 세워 민족적 구성이 다른 영토들까지 한꺼번에 통치하려 들었다. 몽꿋 국왕은 다가오는 서양의 제국주의 위협에 대해 인지하였고, 이후에는 영국 정부에 사절을 보내 긴장을 완화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후 시암을 만만하게 보기 시작한 영국은 홍콩 총독이었던 존 보링 경을 보내 보링 조약을 시암과 맺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시암과 강제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기 시작하였다. 한편 몽꿋 국왕은 말라리아로 일찍 사망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 아직 어린 라마 5세가 왕위에 올랐다.
라마 5세는 왕실위원회를 설치하고 노예제, 농노제를 폐지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펼쳤고, 중앙집중적인 정책들을 많이 내놓았다. 1870년대와 80년대에는 북부에 있던 보호령도 모두 왕국으로 편입시켰으며, 영토를 동북쪽과 남쪽으로 뻗어나가기를 계속하였다. 그는 현재의 각기 부처와 비슷한 12개의 '크롬‘들을 설치하였으며, 여러 차례 근대화 개혁들을 실시하며 국력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을 사이에 두어 완충 국가로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세력들에 의하여 식민화가 되지 않은 국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wikipedia).
역사적으로 볼 때 태국의 국왕은 19세기 영국의 정치적 지배를 당한것은 사실이고 보링조약은 우리나라의 제물포조약과 거의 비슷하다. 일본이 보링조약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태국도 영국의 식민지가 될 뻔했지만 프랑스의 눈치를 봤고 태국의 근대화 노력 또한 영국이 태국을 굳이 식민지배할 필요를 못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일본으로 노선 변경
태국은 또 다른 역경이 찾아온다. 영국의 눈치를 보던 태국은 1차 대전에 연합군이 되어 참전 없이 승전국이 되었고,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정세가 변함고 있음을 직감하고 시암의 옛 땅을 찾고자 미얀마 베트남으로 진군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를 침공한 것이다. 또 일본과 손을 잡고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일본이 2차 대전으로 정세가 어려운 유럽을 기회로 삼고 동남아를 싹 먹어버린 그때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폐전국이 되면서 다시 전쟁으로 삼켰던 땅을 내놓고는 다시 일본의 강압이었다는 구실로 미국에 다시 붙었으며 이러한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으로 UN군으로 참전한다.
태국은 지리적으로도 유리했고, 정치적으로도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물 흐르듯이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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